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춤은 어떻게 발전했을까요? 춤이 예술이자 철학으로 인정받던 고대 그리스에서, 중세 시대 교회의 억압으로 금기시되기까지의 극적인 변화를 상세히 다룹니다.
서론: 춤, 신성한 예술에서 금기의 영역으로
지난 1부에서는 춤이 인류의 생존과 종교 의식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아보았죠. 오늘은 그 흐름을 이어가, 춤이 예술의 정점으로 치달았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를 거쳐, 엄격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억압받았던 중세 시대로 넘어가려 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춤을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행위를 넘어, 인간의 정신과 감정을 담아내는 고귀한 예술이자 철학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중세 유럽의 춤은 어땠을까요? 춤은 종종 신의 뜻을 거스르는 세속적인 행위로 간주되며 억압받았습니다. 춤이 겪었던 이 극적인 변화의 배경에는 어떤 시대적, 사회적 흐름이 있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춤의 황금기,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고대 그리스에서 춤은 연극, 음악과 더불어 신들의 축제와 시민들의 삶에 깊숙이 뿌리내린 중요한 문화였습니다. 춤은 개인의 감정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와 정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습니다.
1.1. 그리스: 디오니소스 제전과 철학자들의 춤
고대 그리스의 춤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습니다.
- 디오니소스 제전: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축제에서는 모두가 격렬하게 춤을 추며 신과의 합일을 추구했습니다. 이 춤은 통제되지 않은 원초적인 에너지와 열정적인 감정을 분출하는 데 중점을 두었죠. 이러한 축제의 춤은 훗날 그리스 비극과 희극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 철학자들의 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춤을 '영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며 극찬했습니다. 그는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려면 시민들이 춤을 통해 균형 잡힌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플라톤은 춤을 정열적인 '무질서의 춤'과 교육적이고 절제된 '질서의 춤'으로 나누어 후자를 권장했습니다.
- 전쟁의 춤: 스파르타인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 승리를 기원하는 춤을 추며 전사들의 용기를 북돋았습니다. 춤은 곧 훈련의 일부이자 사기를 진작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죠.
1.2. 로마: 오락과 권력의 수단이 된 춤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처럼 춤을 철학적으로 깊이 탐구하기보다는, 오락과 유희의 수단으로 즐겼습니다. 로마 제정 시대에는 황제를 위한 화려한 궁정 춤이 발달했고, 대규모 연회에서는 춤이 빠지지 않는 중요한 오락이 되었습니다.
- 미메이(Mimei)와 판토마이무스(Pantomimus): 로마 시대에는 가면을 쓰고 몸짓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미메이'와 '판토마이무스' 같은 전문 춤꾼들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들은 복잡한 서사를 춤으로 표현하며 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죠. 하지만 로마 후기에 춤은 점차 퇴폐적인 오락으로 변질되었고, 이는 훗날 기독교 문화가 춤을 경계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2. 춤의 암흑기, 중세의 금기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유럽에 기독교가 확산되면서, 춤의 위상은 급격히 추락합니다. 교회의 권위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던 중세 시대에 춤은 세속적인 쾌락과 죄악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2.1. 종교적 억압과 춤의 이중성
초기 기독교 교부들은 춤을 신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로 규정하며 춤추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육체를 과도하게 드러내는 춤은 영혼을 타락시키는 행위로 간주되었죠. 하지만 이러한 억압 속에서도 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 민속춤의 생존: 민중들은 마을 축제나 풍작을 기원하는 행사에서 몰래 춤을 추며 그들의 본능과 공동체 문화를 이어갔습니다. 이러한 춤은 민속춤으로 변모하여 중세 시대의 숨통을 트이게 했습니다.
- 죽음의 춤 (Dance Macabre):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었을 때, 춤은 '죽음의 춤'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춤을 추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림과 이야기는 죽음 앞에서는 왕과 농노가 모두 평등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춤이 억압받는 상황 속에서도 당시 사회의 불안과 사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표현 수단이었음을 보여줍니다.
3. 명화와 기록으로 본 춤의 발자취
중세 시대의 춤은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이 그림의 배경에는 당시 부유층의 사교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물건들이 등장합니다. 이 시기에도 궁정 내에서 은밀하게 춤을 즐겼던 흔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죽음의 춤 그림: 당시 화가들은 해골과 인간이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이는 흑사병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춤이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와 삶의 허무함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각 자료입니다.
결론: 춤의 위기를 넘어선 진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화려하게 꽃피웠던 춤은 중세 시대라는 긴 암흑기를 거치며 숨죽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민중들의 삶 속에 숨어 존재했으며, 때로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춤은 예술적 발전보다는 생존과 표현의 본능을 지키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다음 3부에서는 중세의 긴 터널을 지나, 춤이 다시 빛을 보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가겠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궁정에서 귀족들의 사교 춤이 어떻게 오늘날의 예술인 '발레'로 발전했는지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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